나의 생각, 나의 삶
Home > 나의 생각, 나의 삶
 
 
   
 
꽃 바로보기
2013-02-13
2,694
꽃 바로보기

0031198
학도병이었던 내 큰형의 군번이다.
국민학교 들어가기 전후 즈음에 들은 이 일곱 자리 숫자는
정작 내 군번에게는 자리도 내주지 않은 채 넉넉지 않는 나의 기억공간을
오십이 여 년 동안 차지하고 있었으니 새로 들어오는 정보들의 안착에도
적지 않은 텃새를 부렸을 것 같다.

이렇듯 우리 기억의 공간에는
애씀 없이도 들어 온 정보가 오랫동안 보관되는 영역이 있다.
저마다 공간의 용량과 질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한 순간의 오해나 편견이 이 비휘발성 영역에 떨어진다면
그 정보를 지우거나 바로잡는 데는 적지 않는 노력이 필요하다.
소아적(小兒的) 이기성(利己性)의 방해가 클수록 어려움은 커지게 된다.

우리는 오감의 통로로 정보를 흡인하여
분석과 판단의 체계를 거쳐 자신의 옷을 입히고 반응이라는 창문으로 외부와 소통한다.
바른 시스템에 바른 정보라면 분석에는 오류가 있을 수 없다.
저장된 정보도 그렇다. 다만 다른 반응만이 존재할 뿐이다.
요즈음 사람들의 정체성 시스템에 고약한 바이러스가 침투한 것 같다.
시스템들은 불안정해졌고 비휘발성메모리 속 편견과 오해의 영향은 커졌다.

분석오류는 이런 시스템의 불안정 때문이다.
꽃을 인지하면서도
꽃을 꽃이 되게 하는 잎, 줄기, 뿌리는 인지하지 못한다.
우리 속에 새겨진 편견과 오해는 꽃이 꽃으로 피어날 수 있도록 하는
숭고하고 소중한 원천을 볼 수 없게 한다. 곧 꽃의 부정(否定) 이다.
꽃을 피운 줄기와 잎도 보아야 한다.

바로 볼 수 있으려면 다른 영역도 존중하며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
해묵은 편견과 오해의 가림 막을 스스로 걷어내야 바로 볼 수 있다.
남이 걷어내면 바로 다른 막을 치게 되기 때문이다.
나로호는 기술이고
이를 이동시키는 도로와 발사대가 기능일 수는 결코 없다.
꽃을 바로 보아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복지에 대한 논리를 접하며, 2013년 2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