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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툶
2019-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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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툶

고등학생 시절 어느 여름방학 때였다.

또래 몇 명과 함께 인적이 드물고 가본 적이 없었던 바닷가를 갔었다.
지금 생각해보아도 혼자가 아니었었기에 갈 수 있었을 만큼 외진 곳이었다.
썰물 탓에 바닷물은 멀리 밀려나 있었다. 뜨거운 햇볕, 여름 낮의 고요와 함께
졸음이 밀려올 듯 휑한 바닷가 저 멀리 개펄 위에는 조그만 배가 한척 얹혀있었다.
두려움 같은 나른한 적막함이 우리를 감싸주었던 한여름 이었다.

개펄을 헤집으며 게를 잡고 조개도 캐는 것에 정신을 팔렸던 사이
조그만 배는 어느 새 우리 앞으로 다가왔다. 그야말로 숙명적인 조우였다.
해는 정오를 조금 넘어섰었고 밀물이 밀려오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호기심으로 한껏 고조되었던 우리는 그 배로 미역과 소라가 많다고 알려진
무인도를 다녀오기로 의기를 모았었다. 지척의 거리는 결코 아니었다.

주인의 허락이 없다는 찜찜한 생각은 이내 마음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우리’라는 일종의 군중심리가 부당함을 정당화하는데 기여했다.
배의 주인이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허락을 받아야 하는 일들은
그때 우리에겐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결행만이 중요했다.
시간적으로도 그만한 여유가 없었다는 점은 우리의 감행을 부추겼다.
하려는 일을 합리화하는데 어른들과 다르지 않았었고 느리지도 않았었다.

썰물과 밀물이 교차하는 시기나 물살의 흐름을 알 리 없었다.
노를 저어야 배가 가는 줄은 알았지만 정작 노젓는 방법은 몰랐다. 어이해서든
바닷가를 벗어나 제법 큰 바다로 나가보는 것은 들뜬 마음만큼 로망이었다.
그날의 쾌청한 하늘 밑 잔잔한 여름바다는 감성어린 싱싱한 가슴들로부터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헤아려보려는 여지를 앗아가기에 너무 충분했다.
물때가 어떻고 물살이 언제 어느 쪽으로 흐르게 되는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당초 목표한 바를 그만 둘 수는 없었다.
배는 좌우를 번갈아 왕래하는 수차의 몸부림 끝에 마침내 목표한 섬에 도착했다.
찰싹거리는 바닷물은 뾰쪽한 돌부리 사이를 숨 가쁘게 오르내리고 있었다.
배를 섬 바윗돌에 접안시키는 일은 노를 젓는 일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다.
몇 번인가의 시도 끝에 상륙을 포기하고 되돌아가기로 결정한 때는 해가 상당히 기운
즈음이었다. 바닷물이 어디론가 빠르게 흐르기 시작했다. 썰물이 시작된 것이었다.

사태가 심각해지고 있음을 인지하게 되니 긴장감이 심신을 감쌌다.
오로지 출발점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일념으로 남아 있던 모든 힘을 노젓는 일에
쏟아 부었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와야 할 출발점은 오히려 아스라해지더니 마침내
어둠속으로 숨어버렸다. 한 점 불빛도 없었다. 침묵이 어둠과 함께 배안을 차곡차곡
채우기 시작했다. 어디론가 떠내려가고 있다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알 수가 없었다.
무능의 끝점을 접했었던 순간이었다.

노를 젓는 일은 이제 무의미한 일이 되어 버렸었다. 떠내려가고 있다는 것만을
인지한 채 날이 새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더 큰 바다로 떠내려가면 영영 돌아가지
못 할 것이라는 공포감이 십대 소년들의 가슴을 누르고 있었다. 끝까지 놓지 않았던
희망의 끈은 닻을 내려 배를 더 이상 떠내려가지 않도록 고정하는 것이었다.
몇 번을 시도했었지만 수심은 너무 깊었고 어둠은 더 짙게 배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구름에 가려서인지 밤하늘의 별도 보이지 않았었다.

간간히 삿대를 내려 물 깊이를 가늠해 보는 일만은 멈출 수 없었다.
서로를 다독이며 한참을 지내다 삿대를 내리니 수심이 깊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때 주저함 없이 닻을 던졌던 일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망망대해로 흘러가지 않을 것이라는 안도감은 우리 모두를 허기지게 했었다.
배를 뒤져 얻은 몇 줌의 겉보리를 볶았다. 기억으로는 맛이 없었었다.
우리는 등을 서로 맞대고 볶은 보리를 씹으며 아침이 오기를 기다렸다.

시간도 가늠하지 못한 채 그저 아침이 오기만을 고대했던 그날의 심정을 오늘의
동년배기들은 아마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 때는 그것 외에 할 일은 없었다.
아침이 오는 기운을 어렴풋이 느낄 무렵이었다. 먼 곳으로부터 바람에 실려 오는
가느다란 인기척이 있었다. 한 참이 더 흐르고 나니 누군가를 찾는 목소리였다.
밤새도록 우리들을 찾으며 헤매다 거기까지 다다른 부모님들의 애타는 목소리였다.
우리도 소리를 담아 답하며 날이 밝아오기를 더 기다렸었다.

해류는 우리 편이었다. 배를 바다 쪽이 아닌 해안가 쪽으로 밀어 놓았던 것이다.
검댕이로 입과 얼굴을 훔친 우리의 몰골은 이렇게 찬란한 아침을 맞이했었다.
등불을 손에 들고 나를 찾아다니시며 바닷가로 밀려오는 검은 물체를 만날 때마다
가슴을 쓸어안고 아들인지를 살피며 애간장을 태우셨다는 부모님은
그저 말이 없으셨다. 그렇지만 그 시절 나의 서투른 감행이 초래한 불효와 민폐는
갚을 길 없고 풀길 없는 숙제가 되어 내 추억의 박물관에 보관 되어있다.

현재 진행 중인 우리나라의 정치 상황은 나로 하여금
내 추억의 박물관에 들려 내 소년기의 어설픈 감행,
“서툶”이 낳았던 결과를 다시 꺼내보게 한다.
조상들이 고대하고 바랐던 것은 오로지 국태민안(國泰民安)이 아니었던가?
예나 지금이나 백성들이 바라는 것은 마찬가지임을 읊조려 본다.
행여나 빛바랜 생각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광복 74주년이 되는 8월에, sr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