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나의 생각, 나의 삶
 
 
   
 
새 옷을 기다리며
2019-04-16
140
새 옷을 기다리며

존경하는 L 회장님, 지난 4월 9일 자 건설경제신문에 펼치셨던 담론을 잘 읽었습니다. 건설용역이라는 용어를 건설엔지니어링으로 바꾸려는 안이 국토부의 반대로 부결되었다는 기사를 읽은 A 사장이 눈시울을 붉혔다고 하시며, 건설엔지니어들을 위로하시고 국토부 담당자를 만나보라는 격려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회장님께서 알고계신 내용 일부가 사실과 다르기에 감히 한 말씀 올리고자 이렇게 부랴부랴 펜을 들었습니다.

제가 서둘러 이 글을 쓰는 이유를 말씀드렸습니다만 지금 제가 드리려고 하는 말씀이 혹자에게는 그렇게 중요하거나 대단한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가슴이 무너질 정도의 충격이나 슬픔을 당하거나 오랫동안 눈물을 흘리게 되면 눈가를 적실 눈물마저도 마르게 된다고들 하지 않던가요? A 사장이 눈시울을 붉힌 것으로 아셨는데 아마 기대했던 것이 무위로 그쳐 안타까워할 때의 A 사장 모습이 잘못 전해진 것 같습니다. 사실 이번 국토부의 결정으로 A 사장은 눈시울을 붉히지 않았습니다. 기대가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40년이 넘도록 철저하게 ‘을’의 입장으로 살아온 건설용역업자들이라면 A 사장의 심정에 충분히 공감할 것입니다.

회장님께서는 건설업자를 건설사업자로 바꿔주는 것을 무슨 규제나 풀어주는 양 생색을 낼 거리는 아니라고 말씀하셨지요. 그리고 산업부에서는 이미 사용하고 있는, “엔지니어링”이라는 용어가 ‘용역’의 의미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다는 이유로 국토부가 반대했다는 사실을 이해하시는 데 어려움을 겪으셨다고도 하셨지요? 저는 아직도 국토부의 설명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설마 다른 나라들이 채택하여 사용하고 있는 용어를 그대로 수용하는 모습으로 보여질까봐 결정을 유보하며 노심초사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회장님은 어렸을 적에 헌옷을 벗고 새 옷을 입으셨을 때 맘이 설레지 않으셨던가요? 저는 장성한 지금에도 새 옷을 입는 날에는 기분이 좋고 기대감도 생기게 됩니다. 국토부에서 ‘건설용역’에 알맞은 새로운 용어를 찾겠다고 했으니 조금 기다려보자 하시니 그렇게 할 작정입니다. 지금은 건설용역으로 불리고 있지만 머지않아 지식산업 본연의 가치를 잘 담아내는 새로운 옷을 입고 나타날 날을 고대하면서 말입니다.

이왕 시작하였으니 용기를 내 한 말씀 더 올리겠습니다. 이제는 건설사업자가 되었습니다만 이분들이 한동안 EPC (Engineering Procurement Construction)를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사실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어떤 분은 용역사에 근무하는 직원들을 큰 규모로 스카우트했다가 얼마 안 되어 무더기로 해고하였지요. 용역사들과 당사자 모두를 당혹스럽게 하였고, 결과도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었지요.

용역업 경력이 많고 좋은 엔지니어들을 모으면 금방 세계적인 건설사업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혹 의욕을 너무 앞세웠던 안이한 생각은 아니었을까요? 남들이 잘 할 수 있는 것을 나도 하고 싶다는 마음과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에는 차이가 있음을 입증하는 사건으로는 실 있는 해프닝이었습니다. 롯데타워 같은 사업을 순수 우리기술로 EPC 할 수 있도록 건설기술이 발전하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건설산업의 국제경쟁력은 작금의 수준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입니다. 건설용역에 국가적 관심을 보여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생각을 자주 하면 행동이 되고 그것들이 반복되어 습관으로 굳어지게 된다고 배웠습니다. 생각이 너무 깊어도 생색을 너무 앞세워도 “굳어버린 생각”을 벗겨내는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입니다.

회장님 조언을 좇아 용역업자 A 사장이 국토부 담당자를 찾아가게 되면 혹시 그 분들이 바쁘시더라도 흔쾌히 시간을 내주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허심탄회한 의견을 나누고 지식산업인인 ‘건설엔지니어링사업자들’이 자긍심을 가지고 조국 대한민국을 넘어 전 인류의 번영에 더 발전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동력을 얻고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하오나 존경하는 L 회장님, 이번 일을 보면 ‘굳은 생각의 틀’을 벗겨내는 일이 결코 녹록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때문에 주저함이 있으면서도 한 말씀 더 드리겠습니다. 물론 용역업자 A 사장을 위로하거나 조언하시는 것 소중하고 큰 힘이 됩니다. 그러나 회장님 같은 원로들이 앞장서서 강하게 거들어 주신다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김승렬 배상
㈜에스코컨설턴트 대표이사

PS: 이 내용은 2019년 4월 9일자 한국건설경제 신문에 기고 된
"용역업자 A 사장님에게"라는 담론과 짝을 같이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