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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돌과 큰돌이 함께하는 아름다움
2005-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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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돌과 큰돌이 함께하는 아름다움

9월 11일은 “55개국 13억의 인구에 해당하는 이슬람권과 미국과 서구간의 ‘문명의 충돌’이다. 그렇지 않다. 문명의 충돌은 없으며 ‘무지의 충돌’만 있을 뿐이다”라는 두 학자간 상반된 논쟁을 이끌어 내었다던, 세기적 대참사, 9.11 테러가 발생한지 1년이 되는 날이다.

매스컴을 통해 숨 가쁘게 전송되었던 현장의 참혹한 장면들이 눈에 선한데 벌써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으니, 세월이 빠르게 흘러갔음을 탓하기 보다는, 그동안 제 3자인 내가 사건의 핵심으로부터 얼마나 멀어져 있었는가를 새삼 생각하게 한다. 돌이켜보면 9.11 테러사건은 미국과 서방세계에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분을 만들 수 있는 빌미를 주었고 이들은 이 명분 아래 비이슬람권의 지지와 참여를 요구하며 선의 대변자처럼 용감하게 힘을 휘둘렀다. 이 거대한 힘이 생산한 아프가니스탄 공격은 세계의 질서와 수많은 개인의 삶에 침울한 그림자를 드리우며 힘 속에 잠재된 일그러진 자신의 모습을 유감없이 드러내었다. 작은 자들의 목소리와 절규는 그 힘에 눌려서 그냥 그렇게 반향 없이 사라져 버렸다. 마치 터널 막장에서 점보드릴 운전소리에 햄머소리가 묻혀 버리는 것과 흡사했다고 하겠다. 이러한 힘의 지배논리는 나의 내면의 세계에도 있는 것 같다. 나의 과거나 현재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기에도 크고 작은 사건들이 혼동과 질서 사이를 빠르게 왕래하면서 작지만 아주 소중한 것들이 내가 스스로 정의한 큰 것에 의해 무참히 짓밟히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여기에는 내가 아직도 궁금해 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이 힘이라고 하는 것, 크다고 하는 것들이 약하고 작다고 하는 것들을 무시하고 하찮게 취급하여도 된다는 것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이며 과연 누가 이를 정당화 시켜줄 수 있을까? 라는 것이다.

나는 참으로 우연한 기회에 지반공학도가 되었다. 그래도 이 분야에서 부족한 나의 역량으로도 가늠할 수 있는 부분을 조금이나마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나를 안도하게 하며 이 길을 걷게끔 인도하신 하나님께 늘 감사하고 있다. 내가 직업상 대하게 되는 지반은 그 구성양상이 매우 다양하다. 심오한 공학적인 식견을 들먹이지 않고서라도 쉽게 인지할 수 있는 특징 중의 하나는 아마도 작은 것들과 큰 것들이 잘 어우러져 공존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토질역학 책마다 앞부분에서 이 어우러짐의 지표라 할 수 있는 입도분포곡선(grain-size distribution curve)에 대한 설명을 빠뜨리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작은 것과 큰 것의 공존을 아마도 흙이라는 물질이 갖는 아주 기본적인 사항 중의 하나로 인정하고 있는 것 같다. 입도분포가 좋다고 하는 것은 크고 작은 입자들간 서로 차지하는 공간이 아주 적절히 분배되어서 이것들을 한데 모을 때 서로 잘 어우러져 입자 사이에 남게 되는 공간을 최대한 줄여주는, 즉, 빼곡히 채워지는, 다양한 입자들간의 아름다운 조화를 의미한다. 입도분포가 좋은 흙의 세계에는 작은 것이 큰 것에 밀려나고 큰 것이 작은 것을 밀어내는 ‘테러와의 전쟁’과 같은 힘의 논리, 힘겨루기가 없는 것 같다. 오직 서로간의 존재를 인정해주고 포용하는 평화스러운 조화가 존재하는 것 같아 좋다. 최소한, 그 세계에서는 우리네 사람들처럼 다수가 모여 구수회의를 거쳐 자신의 종족을 처형하고 그것을 정당화하는 그러한 사형제도 같은 것은 없는 것 같다.

이러한 조화로움은 터널을 굴착하는 현장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여러 종류의 광물이 단단하게 결합되어 있는 것을 우리는 암반이라고 부른다. 암반은 그 생성과정에서 갈라진 틈들을 가지게 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더 작은 조각으로 갈라지고 쪼개지며 흙으로 모습을 바꾸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큰 돌이 생겨나기도 하고 작은 돌도 생겨난다. 혹자는 신선한 암반은 큰 돌만 존재한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 주장은 스케일상의 문제이지 큰 돌 옆에는 항상 작은 돌이 함께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암반을 굴착한다는 것은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힘을 자연에게 발휘하는 과정이라고 하여도 큰 무리는 없을 것 같다. 이 엄청난 힘으로 인해 상처가 나버린 굴착면의 암반을 들여다보면 거기에도 역시 큰 돌과 작은 돌이 함께 있다. 이들은 오랜 세월동안 유지해 온 자기네들의 평화스러움이 공격을 받고 침해당해도 서로간의 어깨를 부딪치며 외부의 변화에 공동으로 대처하는 여유를 발휘한다. 그네들의 세계에는 작은 돌이 더 존중시 되는 전통이 있다. 이 원리를 읽어내며 나는 굴착된 암반의 노출면으로부터 큰 돌과 작은 돌의 어우러짐의 아름다움과 거기에서 풍겨 나오는 신선함을 맛보곤 한다.

9월이 다하면 2002년의 4분의 3이 지나간 셈이 된다. 숨 가쁘게 달려 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달려가게 할 나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나 자신을 구성하고 있는 크고 작은 것들,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가지 일들과 사건들 그리고 긴장과 견제 사이에서 자연 속에 감추어진 것과 같은 순박하고 청순한 조화를 생산해 내는 원동력을 내속에 비밀스럽게 간직하고 있는가를 생각케 한다. 늦은 저녁(아니면 아주 이른 새벽) 집에 들어 갈 때 벗어놓은 신발을 아침에 다시 신을 수 있을지 조차 알 수 없는 연약한 내 존재 속에 어떠한 조화와 질서가 꿈틀거리고 있는 것일까? 내 내면의 조화가 외면으로 나타나고 다시 사회속의 내면으로 승화하며 작은 것을 포용하고 배려함이 자라나도록 할 때 사회 속에서도 진정한 아름다운 조화가 피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가을이 살포시 문지방을 넘는 이 시기에, 작은 것들을 아껴주고 어두운 구석을 끊임없이 배제하는 자정 조화능력을 갖는 조직이나 단체만이 우리 사회 속에서 자신의 건강함을 오랫동안 간직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김 승 렬>

(2002년 9월 터널학회지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