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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Ⅱ)
2006-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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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II)

옥잠화(옥비녀꽃) 이야기:

우리 집 베란다에는
야생화 분이 여럿 줄지어 놓여 있습니다.
그것들 중에
아담하고 탐스럽게 자란 옥잠화를 담은 분이 하나 있습니다.
아내가 베란다를 드나들며 화초에 물을 주고 분갈이를 하는 것을
간간이 보아 왔지만
선뜻 동참하지는 못했습니다.
창문하나 사이를 두고도
그곳은 나에게 상당히 먼 곳이 되어 있었습니다.
자연히 베란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에도
둔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옥잠화 분에는 애틋한 사연이 하나 있습니다.
지난겨울까지만 하더라도
그 옥잠화 분은
다른 조그만 야생화 분 밑에 놓여 있었습니다.
옥잠화가 잎을 지우고 시들어 죽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죽어버린 옥잠화 분위에 얹어 놓은
다른 야생화에 열심히 물을 주고 있었습니다.
이번 봄에
가슴 설레는 변화가 베란다에서 일어났습니다.
죽어버렸다고 포기해버린 바로 그 옥잠화 분에서
그만 새순이 다섯이나 솟아오른 것입니다.
그것도 아주 싱싱하고 탐스럽게 말입니다.
잎을 지우고 말라버렸던 옥잠화는 한 줌의 흙 속에
한 가닥 가쁜 숨을 내몰아쉬고 있었던 것을
최소한 우리가족은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우리 집 베란다의 옥잠화는 이제 더 이상 분 밑의 분이 아닙니다.
보기에도 싱싱한 자태를 갖추었습니다.
머지않아 더 짙고 끈끈할 향기를 품을 것입니다.
남의 분에서 흘러온 몇 방울의 물에 목을 축여 온 처지를 생각만 하여도
안쓰러움과 정이 가슴에 차오릅니다.
오늘 저녁에도 아내는 베란다 화초에 물을 주었습니다.
소망을 잃어버린 화분에도,
도저히 보임이 없는 화분에도,
물주는 것을 잊지 않기를 나는 거실에서 바라고 있었습니다.
(2006년 5월) ㄱ ㅅ 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