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생각, 나의 삶
Home > 나의 생각, 나의 삶
 
 
   
 
단상(I)
2005-12-12
2,570

단상(I)


언제부터인가
내 맘의 조그만 방에는
가로에 도열해 있는 은행나무와
플라타나스에 대한 상념이
몇 조각 흩어져 머물고 있습니다.

은행나무는 잎을 버릴 때,
차갑고 야속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순식간에 모두 버린다는 것이 그 하나입니다.
체질에 순응하는 결과이리라는 점에 마음을 두면서도
은행나무가 잎을 지울 때는 밤사이가 다르게 서둘러 지우고 마는
그네들의 애씀이 나만의 느낌으로 내속에 남아있습니다.
은행나무에 대한 느낌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은행나무는 잎을 낼 때에도 순식간에 내민다는 것입니다.
가느다란 가지에 연녹색의 기운이 내리는 듯하면 바로 잎이 돋고,
잎이구나 라는 생각을 들게 한 후에는
그리도 빨리 몸을 불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굳이 그네들에게 사연을 묻고 싶지 않아
서둘러야할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짐작하기로 하였습니다.
다만 은행나무는 비밀의 사연을
해마다 노오란 잎에 담아
반복하여 지워내고 있는 것에서 몇 가닥의 추측을 줍고 있습니다.

플라타나스는
봄이 오면 어김없이 팔을 잘리우는 수난을 당한다는 것이
그 둘입니다.
아마도 규모 없는 부산스러움을
순화시키는 사람들의 방편 때문일 겁니다.
잘린 몰골을 한 동안 그대로 드러내곤 하는 것은
더 큰 잎사귀를 내려는 애씀의 숨고르기일 겁니다.
플라타나스는 불같은 내성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는 듯 합니다.
그리도 험하게 취급을 당하더라도
견뎌 내다가
때를 만나면 핏빛사연을 띄웁니다. 그것도 매우 요란스럽게 말입니다.
플라타나스는 삶에 대한 애착이 깊고 질긴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잎을 버릴 때에도 길고도 먼 여정을 택하곤 하는지 모릅니다.
그네들의 잎이 낙엽으로 수북이 내린 거리에는 어김없이
바람에 불리우는 애잔한 생명의 소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은행나무의 잎을 밟으며 어느 시인처럼
낙엽 밟는 소리를 듣느냐고 묻진 않는 것 같습니다.
최소한 나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은행나무도 플라타나스도 열매를 맺습니다.
그것도 많이 맺습니다. 그러나 나는 가을날 마다
누군가가 플라타나스 열매를 주웠다는 이야기는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
누군가가 주울 것이라는 이야기도 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 둘은 이런저런 이야기엔 아예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오로지 자신들에게 주어진 조물주의 섭리를 최선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가로에 쏟아지는 은행알 틈 사이로 전설처럼 빠져나가는
플라타나스의 정열의 기운을 감지하며
어쩌면 그 질긴 생명의 흔적도 머지않아 가로에서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 ㄱ ㅅ ㄹ(2004년 어느 봄날에)